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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7. 스푸트니크의 연인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11. 4. 10:00

    무라카미 하루키

    p8.
    하지만 굳이 평범한 일반론을 펼치자면 우리의 불완전한 인생에는 낭비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다. 만약 불완전한 인생에서 모든 낭비가 사라져 버린다면 그것은 불완전함마저도 없어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p92.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나는 항상 가벼운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나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따라다니는 고전적인 패러독스에 발목을 붙잡히기 때문이다. 즉 순수한 정보량을 놓고 말한다면 나 이상으로 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기에서 언급되는 나는 필연적으로 말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 의해 (그 가치관과 감각의 척도와 관찰자로서의 능력과 여러가지 현실적 이해관계에 의해) 취사선택되고 규정되고 잘라내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언급되는 '나'의 모습에는 어느 정도 객관적 진실이 있을까? 나는 그 점이 무척 마음에 걸린다. 아니, 예전부터 줄곧 마음에 걸렸던 문제다.
    p129.
    스미레는 나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허전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 옆에는 뮤가 있다. 나에게는 아무도 없다. 나에게는... 나밖에 없다. 언제나 그렇듯이.
    p166.
    당신을 스푸트니크라는 말이 러시아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나요? 그건 영어로 traveling companion이라는 의미에요. '여행의 동반자'.
    p185.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마음에 드는 것들은 모두 언젠가 끝이 나게 마련이니까."
    p197.
    나는 그때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멋진 여행을 함께 하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궤도를 그리는 고독한 금속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멀리서 보면, 그것은 유성처럼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각자 그 틀 안에 갇힌 채 그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죄수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거죠.
    p219.
    어째서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는 일단 그 무엇인가를 글로 써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p221.
    나는 일상적으로 문자의 형태로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p223.
    이해라는 것은 항상 오해의 전체에 불과하다.
    p227.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현실, 현실.
    p227.
    아시겠습니까, 사람이 얻어맞으면 피가 나는 법입니다.
    p236.
    이 글은 나 자신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그것은 부메랑과 비슷하다. 던져진 부메랑은 먼 곳의 어둠을 찢고 날아가 불쌍한 캥거루의 작은 영혼을 서늘하게 만들고 다시 내 손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부메랑은 던져진 부메랑과 같은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알 수 있다. 부메랑, 부메랑.
    p302.
    어째서 모두 이렇게 고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그렇게 고독해질 필요가 있는 것인가.
    p346.
    거기에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존재가 아니라 부재였다. 생명의 온기가 아닌 기억의 정체였다.
    p348.
    모든 사물은 아마도 어딘가 먼 장소에서 미리 은밀하게 상실되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적어도 서로 겹쳐지는 하나의 모습으로서 그것들은 상실되어야 할 조용한 장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가느다란 실을 당겨 모으듯 그것들이 합치되는 것을 하나하나 발견해갈 뿐인 것이다.

     

    옮긴이의 말

    p356.
    첫째는 작가 하루키의 문체상의 중요한 변화와 실험이 이 작품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p356.
    이 기간 동안의 체험을 통해 하루키는 '안이한 언어화를 거부할 정도의 체험이 아니면 실제 체험이라고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체험을 언어화라는 흔히 있는 논리 과정을 되도록 회피하고, <스토리>라는 다른 체계로 송두리째 전환한 후, 총체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모습으로서 세상에 제시한다'는 인식의 일대 전환을 하게 된다.
    p358.
    둘째로 이러한 사유의 과정을 통해 하루키의 작품 세계는 그 이전보다 더욱 복성화되어 관점의 폭과 깊이라는 측면에서 한 단계 더 작품의 완숙성을 지향하게 됐다는 점이다.

     

    (★★★)
    과거를 포함해 한 세 번째 읽었던 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줄거리 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다만, 늘 그렇듯,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다들 어딘가에 자신의 일부를 놓고 오는 경향이 있거나, 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작품들을 다시 읽어 나가서인지, 최근 작품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처럼 그림자를 떼어 놓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내가 작품에 대한 논평은 감히 할 수 없지만... 다시 한번 하루키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