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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4. 고독사 워크숍
    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6. 10. 10:00

    박지영

    p11.
    고독사하는 데도 돈이 든다. 당연하다.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돈이다. 그놈의 돈. 일단 필요한 건 자기만의 방이다. 최소한 3일, 길게는 2주 정도 고독하게 죽어갈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중략) 죽으면서까지 원망을 듣고 싶지는 않다. 홀가분하고 가뿐하게, 그러자면 월세방이라도 최소한 보증금 300만 원 남짓은 남기고 죽어야 한다. 그것이 대규가 생각하는 고독사의 윤리였다.
    p81.
    김자옥 씨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잘못 배달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궁금해하지도 않는 질문 말이다. 그러나 잘못 배달된 질문이라도 문을 여는 건 옳은 질문과 옳은 답이겠지만 벽을 부수는 건 틀린 질문과 틀린 답일지도 몰랐다.
    p105.
    한번 깃든 무서움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사는 것도 무섭고 죽는 것도 무섭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도 무섭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는 것도 무서웠다. 도망치면, 도망치는 건 안 무서울까? 사라지는 것도 무섭고 견디는 것도 무섭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안 무서울까? 그것도 무서웠다. 용기를 내는 것도 무섭고 비겁해지는 것도 무서웠다. 가장 무서운 건 부끄러워지는 거였다. 아니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는 거였다. 그러자 어떤 평온함이 찾아왔다. 어차피 뭘해도 무서울 거라면.
    p133.
    누군가에게 마음을 건넨다는 건 허공의 높은 곳에서 위태로운 선을 긋고 그만큼 높이, 아주 높이 뛰고 싶다는 마음과 유사했다. 그것은 추락고 부상에 대한 불안감을 이겨낼 때만 가능한 도약이기도 했다.
    p188.
    시나리오 하나를 완성하는 데도 수없이 수정을 거쳐야 하는 법인데. 그러니 한 번뿐인 삶이 엉망인 건 자기 탓이 아니었다. 원래 그렇게 엉망으로 살아가게 생겨 먹은 거였다.
    p243.
    사람이 사람을 열렬하고 뜨겁게, 애틋하게 좋아하지 않고 가만가만 좋아할수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고 그래서 좋았다. 그 마음이 조각조각 나 구깃구깃해질 것은 예측하지 못했다. 
    p271.
    일상은 회복되는 게 아니라 겨우겨우 이어 가는 거였다.
    p315.
    한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하자 또 다른 좋은 것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좋아해'의 출구로 들어서니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거였습니다. 그렇게 하나씩 좋아해의 문을 만들고, 그 문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저 멀리 있던 고독사의 문도 좋아해 하며 들어가 즐거이 고독하게 죽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p376.
    할머니, 나 계속 이렇게 형편없이 살아도 될까?
    할머니는 말했다.
    당연하지. 세상이 왜 이렇게 형편없는 줄 알아? 형편없는 사람들만 살아남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형편없이 살아. 그러다가 가끔 근사한 일 한 번씩만 하면 돼. 계속 형편없는 일만 하면 자신에게도 형편없이 굴게 되니까. 근사한 일 한 번에 형편없는 일 아홉 개. 그 정도면 충분해. 살아 있는 거 자체가 죽여주게 근사한 거니까. 근사한 일은 그걸로 충분히 했으니까 나머지는 형편없는 일로 수두룩 빽빽하게 채워도 괜찮다고.

     

    (★)
    책을 펼치기 전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 작가님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어쩌면 소설이 현실보다 더 잔혹하거나 더 슬프길 바랬는지도 모르다.

타인의 시선으로... Omniscient P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