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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4. 5. 3. 17:16
김민정
느슨한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이루려 애쓰기보다 내가 원하는 것들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들여다보았다. 그 답을 찾아 가며 새로운 내가 되어가는 것을 느꼈고, 지옥 같았던 집도 나와 감응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혼자 사는 여자야말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많은 주거 정책에서 비혼 여성은 거의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우울함, 무의미함, 자기 혐오... 이런 감정들이 나를 서서히 잠식해가고 있을 때, 무심히 지나쳐 왔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중략) 오랫동안 날 묶어 둔 자물쇠를 풀어야 했다.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그만두기로 했다.
더 예쁜 나에게 도달하기 전까진' 받아들일 수 없는 '임시의 몸'이 아니던가. 임시의 몸으로 사는 것을 이제 끝내기로 했다. 그건 임시의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시의 적절한 책은 약보다 신통하다. 아픈 이들에게 딱 맞는 책을 처방해주는 약국이 있다면 좋겠다.
엄마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도 다름 아닌 욕조였다. 욕조 안에서 엄마를 부르며 한참을 울었다. 세게 틀어 둔 물소리 덕에 조금 더 크게 울 수 있었고, 두 다리로 버티지 않고 주저 앉아 울 수 있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무언의 날'이 점점 늘어간다. '고립'의 악몽이 떠오르며 오싹해진다. 이대론 안 된다. 책을 덮었다. 이제라도 점을 이어 선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되었다. 온전히 독립적이면서도 때로는 함께하는 삶을 위해, 나만의 느슨한 가족을 찾아야 했다.
집이란 놀라운 공간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세계가 얼마나 작아질 수 있는지, 또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지 매일 경험하고 있다.
(★)
요즘 들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다. 온전히 방해 받지 않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 하지만 공동주택의 틀 안에서는 그 자유 역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자유는 누리지 못한 채 침해만 받고 있는 상황이라서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가 나에게는 더 중요해지는 것 같다.
'집'은 고립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또다른 연결의 장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혈연에 의한 가족보다 다른 형태로 맺어진 인연이 더 가족 같은 경우가 있으니, 어쩌면 '가족'에 대한 정의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