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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여행의 이유개인 도서관/도서관1 2020. 11. 26. 14:29
김영하
호텔에선 언제나 삶이 리셋되는 기분이다. 처음 들어섰을 때도 그렇고, 다음날 외출하고 돌아올 때도 그렇다. 호텔은 집요하게 기억을 지운다.
오래전에 읽은 소설을 다시 펼쳐보면 놀란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다. 소설 속의 어떤 사건은 명확하게 기억이 나는 반면 어떤 사건은 금시초문처럼 느껴진다.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뇌는 한 번 경험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잊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어딘가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어서 찾을 수 없게 될 뿐.
(★)
TV를 통해서 유명인사가 된 저자의 여행과 관련된 '에세이'이라는 호기심에 책을 들추게 되었다. 우습지만, 저자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나에게는 위의 두 문장의 내용이 명확하게 기억나는 부분이다.
여행을 가면서 다양한 숙소를 경험한다. 호텔에 묵는 동안에는 누군가 나를 위해 매일 침대를 정리해주고 뽀송한 수건을 가져다 준다는 것에서 여행 중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 있다. 이 부분은 아마도 기억을 집요하게 지운다는 저자와는 다르게 나의 수고를 덜어주는 어떤 행위로 나는 받아들였다. 여행과 달리 일상으로 오면, 내가 나를 위해서 침대도 정리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낀 적은 없었고, 오히려 이런 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피로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문득, 나의 여행지에서 내 방을 정리해주셨던 분이 내가 고맙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 공간에 머물렀을 거라는 생각으로 단순한 일이 아닌 남에게 행복을 주는 귀한 일을 했다고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나도 나에게 그런 마음을 다시금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