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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 혜민스님개인 도서관/도서관1 2019. 5. 28. 09:04
추신1. 덧붙이는 것을 앞에 쓰는 이유는 최근에 불거진 혜민 스님 문제 때문이다.
책의 내용이 참 좋았는데, 뒷통수는 이렇게도 맞게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글을 지워야 하나 싶지만, 이 역시 기록의 일부라서 그대로 놓아둔다.
만약 현재의 모든 문제가 사실이라면, 저자가 다중적 자아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좀 슬프긴 하지만,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호수에 떠 있는 백조처럼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서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지만, 그저 남들의 눈에는 편안해보이는 백조일 뿐이다. 이는 비단 나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업무 진행하다보면, 나의 고객들은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이 뛰어 다닌다. 그러나 이 것을 알아주는 것은 내 파트너 뿐. (파트너라도 알아줘서 다행이고 고맙지요.)
또한, 최근에 업무량이 많아지면서, 그 핑계로 논문 쓰는 것을 또 미루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해야 하고, 목표가 있어야 나아간다는 지도 교수님의 말씀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됐다. 그렇다. 혜민스님은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을 이미 걸어보신 분이다. 나는 내가 문제아라고 생각했는데, 혜민스님도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를 바가 없으셨나보다. (하하하)
... 교수 생활 4년 차에 접어들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뛰어난 학자가 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논문을 쓰긴 썼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고, 연구비를 따오는 일도, 다른 학자들과 네트워킹 하는 일도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
요즘의 내가 그렇다. 공부가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논문을 쓰려고 하니 잘 못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내 맘대로 글을 적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세상에 많은 사람이 있는데 기껏 얼마 안되는 사람의 생각을 일반화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
회사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냥 한 자리에 있어서 내가 잘 하는 일을 했으면 자존감이 낮아질 일도 없을 것이지만, 나는 왜 모험을 선택했을까? 내가 내 발을 찍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특히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다행히 나는 이런 부분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소위 말하는 아싸의 기질을 가졌나 보다.
하지만, 최근에 주변에는 또 이런 일들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듣는 일"뿐. 그리고 비슷한 경험을 나눠주는 것 뿐. 크게 도움될 일로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 마음의 무거움을 조금이라도 내려주고 싶은 것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나의 배려이다.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남에게 말하고 나서 '다시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지' 하고 후회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들어준 상대가 따뜻하게 수용해주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돌리는 듯한 평가의 말을 하거나 잘 듣지 않고 딴짓을 했기 때문이에요. 그건 그들이 잘못한 것이지 용기를 내어 말한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살면서 우리는 피드백을 주고 받는다. 그러나 그것이 익숙치 않아서, 어쩌면 나는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과신으로 누군가 주는 피드백을 나를 싫어해서 Blame(비난)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뭘 말해도 내가 듣기 좋은 말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제 3의 누군가가 말하는 것은 한번 쯤 들어볼만하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나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오히려 용기를 내어 말한 그 사람이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돌려버리는 방식은 자신도 알고 있던 무언가를 들켜서 부끄러운 마음에 버럭 화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가끔 궁금하다.
남들의 부정적인 의견이 내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두지 마세요. 내 미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말하는 사람들은 내 마음 버스에서 몽땅 다 내리라 하시고 내가 지금까지 온 길, 계속해서 운전해서 가시면 돼요.
책을 읽으면서 위 구절이 참 걱정이 되었다. (내가 걱정을 하다니 말도 안되지만...) 위의 내용에 극 공감할 사람들 중 일부는 사실 공감을 하면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이 되기 때문에다. 그 경계를 내가 지을 수는 없지만, 예를 들어 오만을 부리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누군가 염려가 되어 하는 말도 부정적인 의견으로 받아들이고 "아웃"시킬 것이다. 회사에서 고집이 센 상급자들의 모습, 혹은 내가 제일 잘났지만 그래서 모두가 나를 미워한다고 착각하는 그 누군가는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위의 내용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남들이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데,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거나 문제가 생기면 모두 자기 탓을 돌리는 경우. 남의 잘못이 아니라 내 잘못이 크다고 자책하는 이들. 그리고 이런 이들은 앞서 언급한 내가 위의 문구를 오인할 소지가 있다고 말한 사람들에 의해서 휘둘릴 경향이 높기 때문에, 위의 문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울한 이야기로 마무리 할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마지막으로 기분 좋았던 순간들에 대한 묘사. 마치 나의 행복을 적어주신 것 같아서 고마웠던 문구로 마무리 해본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려 본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